12: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2: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2: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2: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12: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본문의 대의>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일을 염려하면서 지금까지의 책망과 권면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세 번째 방문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14~15절 :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방문하면서도 바울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방문을 하면 ‘돈이 필요한가 보다’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고, 오히려 너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것이 목회자의 마음임을 고백합니다.
*16~18절 :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과 관련하여 바울을 모함하는 자들에 대하여 호소합니다. 구제헌금을 빌미로 바울이 이득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오해하려고 하면 끝이 있겠습니까 만은, 바울은 옳은 일을 위해서는 오해받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습니다.
*19~21 :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서로가 만났을 때 잘못된 행실에 대하여 징계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며,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근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고백합니다. 결국 바울이 바라는 것은 고린도교회가 죄 가운데 벗어나 회복되어지고, 영적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목회자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상과 적용>
교회를 향한 목회자의 마음은 사실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과 똑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지만, 그보다 더욱 간절한 것은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기를 원하는 마음이죠. 그러나 자녀들은 철이 들기까지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론 오해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 가운데는 목회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유독 고린도교회에는 그런 성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계속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오해하고, 비방하는 거죠. 가장 큰 이유는 고린도교회 안에는 유독 심각한 죄의 문제가 많아서 그런 자들에 대하여 엄한 책망과 징계를 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바울에 대한 억한 감정을 가진 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딜레마이자 또한 목회자의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분명 큰 잘못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와 심판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 하면 자칫 오해를 받고, 미움을 받는다는 것 또한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기도가 필요한 것이고, 더욱 더 신중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대해 매우 조심스럽다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것이 목회자의 마음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당당하고 거침없는 바울이 영적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을 다룰 때는 정말 신중에 신중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만큼 성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목회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죠.
저도 바울과 같은 좋은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좋은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너무나 좋은 성도님들을 붙여주신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사랑과 인내 가운데 더 좋은 목회자로 자라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소망교회도 고린도교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세상의 온갖 죄악의 물결이 교회 안에까지 밀려 들어오지 않도록 늘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