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1장15-30절 [개정개역]
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
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오늘의 본문은 희망 찬 미래에 대한 묘사 후에 라헬의 절망적인 그림이 뒤따릅니다.
1.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라헬의 위로 (15-22)
15절의 라헬은 요셉의 두 아들들인 북 왕국을 대표하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그리고 북 왕국와 남 왕국의 경계에 살았던 지파인 베냐민의 모계 족장입니다. 그리고 라마는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가는 도중에 멈추어서 울었던 장소입니다.
라헬은 원수에 의하여 자신들의 아이를 잃은 모든 어머니들의 상징입니다. 야곱의 아내로서 라헬은 자신의 아들 베냐민이 자라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6–17절은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이 자라는 것을 다시 볼 것이라고 위로의 약속을 하십니다.
16-17절의 돌아오다는 동사는 운명을 회복하다라는 뜻으로, 후손들에게 혹은 ‘네 미래에’ 소망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18–20절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라헬의 후손 중의 하나인 에브라임의 탄식에 찬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멍에로부터 도망치려는 길들여지지 않는 송아지 같았고, 그들이 포로됨으로 말미암아 길들여지고 훈련이 된 70년 후에 그들을 돌아오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9절에 볼기를 치다 혹은 가슴을 치다라는 것은 수치 혹은 양심의 가책을 몸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며, 20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그러므로 내 내장이 그를 위하여 소리를 낸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에브라임에 대한 격렬한 슬픔과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극도의 감정을 표현한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알야아 하는 건 에브라임이 돌아오고 회개하는 근거는 백성들의 선한 행위에 놓여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돌아온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1–22절에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권하시되 포로에서 돌아오며, 그 준비로서 이정표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곧 신실하지 못한 딸에게 망설이지 말고 돌아오라고 하나님이 재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위로하시는 하나님 (23-26)
예레미야는 유다의 땅, 곧 그 도시들과 특별히 시온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도시들과 시온은 불의와 우상 숭배가 일어난 폐허의 장소라고 불리는 대신에 ‘거룩한 거주지’와 신성한 산으로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은 모든 불행을 소망으로 바꾸실 것이고, ‘그들의 운명을 회복’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3. 씨 뿌릴 날이 이르리니 (27-30)
27–30절에서는 미래를 위한 예언을 보여주십니다. 이 절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소망과 미래에 대한 더 많은 약속들 포함합니다. 땅은 더 이상 시체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로 채워질 것이며, 정말로 삶의 풍성함이 있을 것을 나타내십니다.
특히, 29절은 잠언과 에스겔서에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백성들은 자신들의 조상의 죄로 자신들이 심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조상의 죄악으로 인한 징계는 없고, 각 개인의 죄에 대해 책임질 뿐임을 나타내십니다.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해 헌 옷을 벗듯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죄와 단호히 결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에게 위로를 하시면서 징계와 회개의 태도를 요구하십니다. 기뻐하는 자식인 에브라임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마음엔 창자가 뜰끓는 것 같은 아픔이 가득합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예수님의 몸된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사랑하셔서 이 시간을 허락하신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지만"행사 중심, 성장 중심, 자본 중심"의 모습이 더 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가슴 아파하시지만, 코로나를 통해 한국 교회가 모든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 그 한분만을 교회가 바라보도록 하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에브라임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탄식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위로해 주십니다.
공동체는 영적, 육적으로 건강할 때 모든 구성원들이 바르게 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안식년 제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쉼 없이 많은 행사, 사역, 봉사, 섬김등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보다 지치는 마음을 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오늘날의 발간되는 신학서적들을 보면 목회자의 탈진, 목회자의 회복에 관련된 도서들이 참 많이 발간됩니다. 이런 모습들이 한국교회의 모습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후에 한국교회가 참 기대가 됩니다. 한국교회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버렸지만,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쉼을 얻고, 하나님과 더 깊어지며, 성도들을 깊이 돌보고, 함께 모여 교제하기를 원했던 교회의 간절함이 합쳐졌을 때, 잃어버렸던 첫 사랑이 회복되고, 서로를 더 사랑하며 예배의 감격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정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예배 말씀처럼 눈 앞에 닥친 일만 보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들을 예측하고, 관망하고, 도전하며 결국 위로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신앙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한 주를 시작하는 우리 예소망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