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26: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26: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6: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본문의 대의>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최대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여 제정된 명절로, 구원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절기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가족의 대표가 성전에 올라가서 유월절 양을 잡아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월절 양을 준비하지 못한 가정에서는 무교병과 나물, 포도주 등으로 유월절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한 마지막 유월절 식사도 무교병(떡)과 포도주로 이루어진 간단한 식사였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갑자기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당황한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면서 각각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 물론 이미 대제사장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약속했던 가룟유다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어서 다시 한번 가룟유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이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 말을 들은 가룟유다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인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그러자 주님의 세 번째 충격적인 대답이 이어집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주님은 지금 세 번이나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연거푸 회개의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영적으로 무딘 가룟유다라 할지라도 깨달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병행 구절인 요13:26 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요13:27)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회개를 촉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벽기도가 그치고,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가 멈추더니, 이젠 주일예배조차도 각 가정에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에서는 교회를 행해 계속해서 압박을 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이웃을 생각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집단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또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억울함을 토로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이런 환난 가운데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예배생활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경건생활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살피고 회개해야 합니다. 혹시 주일예배를 종교적 의무로 드렸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정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예배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삶 속에서 주님을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진정한 회개가 없다면, 이 고난은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가는 고난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라고 질문한 반면 가룟유다는 예수님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라고 묻습니다. 이 차이는 한 단어 차이지만 매우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다른 열 한 제자와는 다르게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말은 가룟유다에게는 예수님께 대한 바른 믿음과 고백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제자로 지냈던 것은 정말로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제자 공동체의 회계를 맡으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었다는 말입니다. 그에게는 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가 되어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그리고 또 주(主)로 고백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바른 신앙고백은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신령한 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길었던 3월 한 달이 지나고 4월을 선물로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두가 전염병과 싸우고 있는 사이 어느덧 따뜻한 봄이 오고, 산과 들과 길거리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었습니다.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님은 올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봄을 준비하고 계셨군요.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 사람들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천지 만물의 모든 것은 다 주의 뜻대로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군요. 이제라도 깨닫게 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참 어두워서 주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주셔도 속히 깨닫지 못하고 현실 앞에서 원망과 불평만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룟유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시오, 나의 하나님으로 분명히 고백합니다. 이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간절히 구하옵나니 이번 코로나 19로 인해 겪고 있는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하게 하시고, 먼저 나 자신과 우리를 살피며,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겸손하게 기도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고난의 때가 속히 지나가게 하시고, 다시금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고, 신앙이 회복되며, 주를 위한 헌신과 봉사가 회복되며, 세상을 향한 복음전파가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아가 이 나라와 전 세계에서 전염병이 속히 종식됨으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