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 시편 139:1~6
마트에서 아빠랑 딸이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돈이 모자라서 그런데 오늘은 책만 사고 인형은 다음에 사줄게” 그랬더니 딸이 하는 말이 “아빠, 그러면 이 인형은 주인 모르게 슬쩍 가져가요” 딸의 예상치 못한 말에 충격을 받은 아빠는 “안 돼! 하나님이 보고 계시잖아!” 그러자 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빠, 하나님은 하늘에서 절대 못 보세요”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단 말이야!” “천장이 있잖아요, 천장이!”
물론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실제로 우리 가운데는 이 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는 있으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죠. 하나님을 잘 모르면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보통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으로 구분을 합니다. ‘공유적 속성’이라는 말은 ‘인간이 하나님과 공유하는 속성’이라는 의미로, 사랑이라든지 거룩과 같이 우리가 닮아가야 할 하나님의 속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반면 우리가 도저히 닮을 수 없는 하나님만의 속성을 가리켜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무소부재하심, 영원불변하심 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시편 139편은 다윗이 지은 시편으로서, 하나님의 비공유적인 속성 즉, 우리 인간과는 다른 하나님만의 속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백하고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하나님께 대하여 더 깊이 알아갔으면 좋겠고, 그로 말미암아 진심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매일의 삶 속에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늘 의식하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코람데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139편은 크게 네 문단으로 나누어집니다. 각 문단이 여섯 절씩, 총 네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문단으로 ‘전지하신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는 나에 대해서 완벽하게 아십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분이요, 전지(全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구속하시고, 택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시며, 늘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계십니다.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는 말은 나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신다는 의미입니다. 또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는 말은 나의 속마음까지도 다 꿰뚫어 보고 계신다는 말이죠. 내가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의 마음속까지 알고 계시고, 나의 의도와 생각과 계획과 고민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39: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내가 장차 가게 될 길은 사실 우리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아실 뿐 아니라, 친히 인도해 주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내가 눕는 것’은 나의 휴식, 또는 사적인 생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에서 말한 ‘나의 모든 길’(공적인 생활)과는 대조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 또 은밀하게 행하는 모든 행위까지도 다 알고 계시고, 또 살펴보고 계십니다.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특히 하나님은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이 많습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한 말부터 별생각 없이 뱉은 말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듣고 계십니다. 따라서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139: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나의 앞뒤를 둘러싼다’는 이 표현은 적군을 포위하여 꼼짝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그만큼 시인의 조그만 움직임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관찰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삶을 아는 사람은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십 년 이상 다윗은 목숨을 위해 도망 다니며,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고난의 삶의 연속이었지만 결국은 그것이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지금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첫 문단에서 다윗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고 고백하면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감탄과 찬양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너무나 기이합니다. 놀랍습니다.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시는 하나님,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정말로 믿고 계십니까? 그리고 삶 속에서 그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계십니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산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결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또한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안다면 우리의 기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또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더욱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두렵습니까? 아니면 위로가 됩니까? 하나님이 나를 아시기 때문에 두렵다면 그것은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아시기 때문에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사람들이 날 몰라 준다 해도 주님께서는 다 아시기에, 사람들이 날 오해해도 주님은 다 아시기에, 전지하신 하나님 때문에 오늘도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