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묵상의 유익 / 시편 119:9~11
예수님은 공생애 가운데 구약성경을 굉장히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만 해도 무려 구약성경이 92군데나 인용되고 있는데요,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늘 성경말씀을 인용하셨고, 또 그 말씀대로 온전히 이루면서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성경구절을 다 외우고 계셨을까요? 예수님은 신적인 지혜를 가지셨기 때문에 한 번만 읽으면 모조리 다 외웠을까요? 그러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성경 전체를 그렇게 꿰뚫고 계셨을까요?
예수님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성경책이 없었습니다. 두루마리에 필사한 필사본도 너무 귀해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각 회당마다 구약성경 가운데 토라(모세오경)와 함께 시편이나 선지서 몇 권이 있을 뿐입니다. 또 그 두루마리도 아무나 가서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릴 때면, 랍비들은 성경을 낭독하고 그 뜻을 풀어 가르쳤습니다. 또 회당마다 지금의 주일학교나 제자훈련과 같은 성경공부반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로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지요. 나이에 따라 처음엔 모세오경, 그 다음엔 미쉬나나 탈무드 같은 율법 해설서들을 배웠습니다.
예수님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회당을 다니시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회당에서 들은 말씀을 암송하고, 암송한 말씀을 또 묵상하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에는 말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성경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율법학자들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에는 정기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학교가 있었습니다. 특히 명절 때가 되면, 명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에 올라온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 성경강좌가 열리곤 했다고 합니다.
눅2:41을 보면, 예수님의 부모님도 매년 유월절이 되면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인의 성년은 12세입니다. 예수님이 12살이 되셨을 때,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이제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 가보니까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질문도 하면서, 말씀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떠난 줄도 모르고 며칠씩을 그렇게 성전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운 말씀들이 어떻게 다 기억될 수 있었을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반복해서 새기는 것입니다. 열심히 듣고, 들은 말씀을 암송하고, 암송한 말씀을 또 묵상하면서 마음에 새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예수님 안에 충만하셨을 때 예수님은 비로소 입을 열어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까지 약 30년의 세월을 평범한 목수로 지내시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데 투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다면, 우리는 더욱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매일 계속하기 위해서는 말씀 묵상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 묵상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1.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거룩한 삶이란, 죄에서 떠난, 구별된 삶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삶은 주의 말씀을 지키며 살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주의 말씀을 어떻게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 답은 바로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여기서 ‘마음에 두었다’는 말은 ‘마음에 새겼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내 마음에 말씀을 새기는 훈련을 했습니다. 말씀을 계속해서 듣고, 암송하고, 묵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계속해서 우리 마음에 새기면, 우리의 속사람이 깨끗해집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깨끗할 때, 우리의 행실도 깨끗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죄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계신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내 안에 있는 미움과 분노와 짜증과 욕심과 교만과 게으름 때문에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죄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결심으로 되던가요? 은혜 받으면 다 해결되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극복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런 죄를 이기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로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일을 날마다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말씀은 주의 말씀이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하고, 나의 매일매일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고백입니다. 어떻게 주의 말씀이 내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비출 수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묵상은 우리 삶에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킵니다.” 여러분 요란한 것만 혁명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란한 혁명보다 더욱 대단한 것이 소리 없이 변화를 일으키는 조용한 혁명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자입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완전히 바뀐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어서 나오는 17절에 답이 있습니다.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될 때 비로소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것, 그것이 바로 말씀묵상입니다.
2.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시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별명이 “시험하는 자”입니다. 이 땅에서 사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성도의 시험은 끝나지 않습니다. 사단은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그 시험을 어떻게 이깁니까? 네, 말씀으로 이깁니다. 예수님은 세 번의 시험을 모두 “기록되었으되~” 성경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승리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급하게 성경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늘 읽고 묵상하던 그 말씀으로 사단의 시험을 넉넉히 이기셨습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렇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시험하는 저 원수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면,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주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시험은 우리 밖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부패한 욕심이 시험을 불러들입니다.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그런데 이런 유혹을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는데 ‘분별력’입니다.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올바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이 주는 유익은 바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있을 때 무엇이 유혹인지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예리하게 분별하고, 예수님과 같이 넉넉히 시험을 이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