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귀한 성도들 / 시편 16:1~3
시편 16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그 내용상 위기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다윗은 굉장히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도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바로 깨닫고 실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교회에 대해 이런 기대를 가집니다. “교회 안에는 주님의 마음을 닮은 좋은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회는 그리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물론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와 꿈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 성도들의 모습은 설익은 과일과도 같습니다. 단맛보다는 떫은맛이 납니다. 심지어 썩은 부분도 있어서 잘못 먹다가는 배탈이 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점점 변화되어가는 것이지요. 이것은 미래의 일이며, 목표이며, 과정입니다. 신학적 용어로는 ‘성화’라고 하지요.
이 땅의 성도들은 완전히 성화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던 옛 본성, 즉 죄성이 꿈틀거리며 밖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찌르기도 합니다. 때론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문제는 오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초대교회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했던 초대교회 당시에도 성도들 사이에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교회가 고린도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심각한 파당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1:12 말씀을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나는 바울을 따른다, 나는 아볼로를 따른다, 나는 베드로를 따른다고 하면서 제각기 편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은 우리들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다 라고 떠들고 다닌다고 하니”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 안에는 음행하는 자, 성도들끼리 문제로 법정에서 싸우는 자,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사랑이 부족하여 서로를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특히 은사 활용의 문제로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하여 그렇게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을까요?
감사한 것은 그래도 조금씩 변화되는 성화의 과정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를 믿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다면, 내가 과연 예수를 잘 믿고 있는 것인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성도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바로 성화의 과정 중에 있는 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론 실수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을 볼 때도 역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화의 관점을 가지고 성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2. 성도들은 존귀한 자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직 부족한 모습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분명히 그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존귀하다’라는 말은 영광스럽다는 뜻인데요, 보통 존귀하신 하나님, 존귀하신 예수님 이렇게 찬양할 때 쓰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성도들을 향해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존귀한 자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성도는 왜 존귀한 자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주셨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성도는 충분히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더구나 성도는 우리 안에 보배를 품고 있는 자입니다. 고린도후서 4:7에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비록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 안에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도는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우리의 존귀한 삶이 시작되는 것이죠.
3. 성도들은 나의 모든 즐거움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성도들을 향해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다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 살아가는 존귀한 성도들 때문에 내가 즐겁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도들이 우리의 즐거움이 될까요?
먼저, 하나님께서 이 땅의 성도들을 향해 ‘나의 기쁨, 나의 즐거움’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성도들을 바라보시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십니다. 스바냐 3:17을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닮기 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성도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이다 보니 때론 서로에게 실망하고, 또 서로가 아픔을 주고받기도 하지요. 그래서 공의의 하나님이라면 악한 백성들을 향해 진노와 심판을 내리셔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시고, 그 백성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그들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성도들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기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사람이 바로 지금 앞에 있는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소망교회 성도들이겠죠.
사랑하는 예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들이, 예소망교회 성도들이 그렇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를 존귀히 여기고,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맛보고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